조직에서 일정 기간 이상 근무하다 보면, 승인 절차에 대한 불만이나 질문을 한 번쯤은 접하게 됩니다.
“왜 이렇게 단계가 많습니까?”
“이 정도 사안도 꼭 이 라인을 거쳐야 하나요?”
경영기획 부서에서 근무하다 보면 이러한 질문이 자연스럽게 제게로 향합니다. 승인 절차는 흔히 비효율의 상징처럼 여겨지지만, 실제로 조직의 운영 흐름을 가까이서 지켜보면 승인 절차가 단계적으로 정착된 데에는 나름의 필연적인 배경이 존재합니다. 이 글에서는 현장에서 직접 겪어온 경험을 바탕으로, 그 배경을 구조적으로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승인 절차의 변화
현재의 승인 구조만 놓고 보면 처음부터 이렇게 설계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조직의 시작점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1) 초기 조직은 속도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조직 규모가 작고 사업 구조가 단순할수록 승인 절차는 자연스럽게 간소화됩니다. 의사결정권자와 실행자 사이의 물리적·심리적 거리가 짧기 때문입니다.
- 팀 단위에서 즉시 결정 가능한 사안이 많았고
- 부문장이 실무 내용까지 충분히 파악하고 있었으며
- 별도의 승인 절차 없이도 책임 소재가 비교적 명확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절차보다 의사결정 속도 자체가 경쟁력이었습니다.
2) 문제가 발생한 지점은 ‘결정의 결과’보다 ‘책임의 경로’였습니다
조직이 성장하면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대부분의 문제가 잘못된 판단 그 자체보다도 사후에 책임을 설명하기 어려운 구조에서 발생했다는 점입니다.
- 부서 간 협업 과정에서 의사결정 주체가 모호해지고
- 예산이나 인력 투입에 대한 책임 공방이 생기며
- 감사나 보고 과정에서 결정의 근거를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었습니다
이 시점부터 조직은 빠른 결정만큼이나 결정의 정당성과 기록을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3) 승인 단계는 통제가 아니라 대응의 결과였습니다
현장에서 느낀 바로는, 승인 절차는 누군가 의도적으로 복잡하게 만든 제도가 아닙니다.
대부분은 문제를 한 번 겪은 뒤, 같은 상황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대응으로 추가되었습니다.
- “이 정도 사안은 최소한 공유가 필요하다”
- “이 결정은 혼자 책임지기에는 리스크가 크다”
- “나중에 설명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판단들이 누적되면서 승인 절차는 자연스럽게 단계화되었습니다.
조직과 승인 절차의 역할 분화
조직 규모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승인 절차는 단순한 결재 라인이 아니라 기능적으로 분화된 검토 구조로 작동하게 됩니다.
1) 승인 단계는 직급별 역할 분담의 결과입니다
경영기획 관점에서 보면 승인 절차는 직급에 따라 서로 다른 역할을 부여한 구조입니다.
- 팀장은 실행 가능성과 일정 현실성을 검토하고
- 부문장은 부문 전략과의 정합성을 판단하며
- 임원은 전사 관점에서 리스크와 우선순위를 조정합니다
이 과정은 결정 속도를 늦출 수는 있지만, 대신 의사결정의 관점을 다층적으로 확보해 줍니다.
2) 각 승인 단계는 서로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실무를 진행하다 보면 승인 단계별로 반복되는 질문의 성격이 명확히 다르다는 점을 체감하게 됩니다.
- “현장에서 실제로 실행 가능한 안입니까?”
- “우리 부문의 방향성과 맞는 결정입니까?”
- “지금 이 시점에 이 안건이 최우선 과제입니까?”
이 질문들은 중복이 아니라, 의사결정을 서로 다른 차원에서 검증하는 과정입니다. 승인 절차가 단계화된 이유는 바로 이 질문들을 분리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3) 경영기획은 이 질문을 미리 구조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경영기획 조직이 승인 절차의 중심에 위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각 승인 단계에서 어떤 질문이 나올지를 예측하고, 안건 자체에 그 논리를 미리 반영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입니다.
- 실행 관점의 현실성
- 전략 관점의 정합성
- 전사 관점의 리스크
이 세 가지를 사전에 구조화하지 않으면, 승인 단계는 단순한 지연 요인이 되기 쉽습니다.
승인 절차는 조직의 신뢰 수준
조직을 오래 지켜보다 보면, 승인 절차는 통제 장치라기보다 조직 내부 신뢰 구조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1) 신뢰가 낮을수록 절차는 촘촘해집니다
새로운 조직이나 변화가 잦은 시기에는 승인 절차가 늘어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개인의 역량 문제가 아니라, 조직 차원의 학습 과정에 가깝습니다.
- 판단 기준이 아직 정립되지 않았고
- 실패 비용이 상대적으로 크며
- 구성원 간 판단 수준에 대한 신뢰가 충분히 쌓이지 않은 상태
이런 환경에서는 절차가 안전장치 역할을 하게 됩니다.
2) 신뢰가 쌓이면 승인 단계는 형태를 바꿉니다
흥미로운 점은, 신뢰가 쌓인 조직에서는 승인 단계가 사라지기보다 형태가 바뀐다는 점입니다.
- 사전 협의로 많은 내용이 조율되고
- 공식 승인 단계는 확인 수준으로 축소되며
- 문서보다 대화와 합의가 앞서는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즉, 절차의 수는 줄어들지 않아도 체감되는 부담은 현저히 낮아집니다.
3) 승인 절차의 목적은 통제가 아니라 예측 가능성입니다
결국 승인 절차의 핵심 목적은 구성원을 통제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조직 전체가 어떤 기준으로 결정이 내려지는지 예측 가능하게 만드는 것, 그 자체가 목적입니다.
조직의 승인 절차를 둘러싼 불만을 들을 때마다, 저는 항상 두 가지 시선이 동시에 떠오릅니다. 하나는 실무자로서의 답답함이고, 다른 하나는 조직 운영을 오래 지켜본 사람으로서의 이해입니다. 사실 이 두 시선은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정 시점을 지나면 묘하게 공존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저 역시 “굳이 여기까지 보고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자주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승인 절차가 사라진 조직보다 무너진 조직을 더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특히 경영기획 업무를 맡으며 느낀 점은, 승인 절차가 비효율처럼 보이는 순간은 대부분 ‘절차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왜 이 절차가 필요한지에 대한 공감이 부족할 때’라는 사실입니다. 같은 결재 라인이라도, 그 배경과 목적을 이해하고 들어가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의 체감 온도는 완전히 다릅니다. 전자는 불편하지만 감내할 수 있는 과정이 되고, 후자는 의미 없는 통제로 인식됩니다. 문제는 대개 후자의 상태가 오래 방치된다는 데 있습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점은, 승인 절차에 대한 불만이 조직의 젊은 구성원에게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일정 직급 이상, 일정 연차 이상이 되면 오히려 “이 정도 사안은 왜 명확한 기준이 없지?”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이는 승인 절차가 단순히 위에서 아래로 강요되는 제도가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는 구성원 스스로가 조직에 요구하는 안정장치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책임이 커질수록, 개인은 자유로운 판단보다 예측 가능한 구조를 원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인 절차가 항상 옳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절차가 ‘질문을 검증하는 장치’가 아니라 ‘판단을 미루는 수단’으로 변질될 때 발생합니다. 누구도 최종적으로 판단하지 않으려 하고, 모든 결정을 다음 단계로 넘기기만 하는 조직에서는 승인 단계가 늘어날수록 오히려 리스크가 커집니다. 이때 승인 절차는 책임을 나누는 구조가 아니라 책임을 흐리는 구조가 됩니다. 경영기획 입장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지점도 바로 여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승인 절차를 줄이자는 주장보다, 승인 단계마다 던져야 할 질문이 무엇인지 명확히 하자는 쪽에 더 공감합니다. 이 단계에서는 실행을 묻고, 이 단계에서는 방향을 묻고, 이 단계에서는 리스크를 묻는다는 암묵적 합의가 조직 내에 형성되어 있다면, 절차는 많아도 혼란은 줄어듭니다. 반대로 그 구분이 흐릿해질수록 구성원은 절차 자체를 불신하게 됩니다.
결국 승인 절차는 조직 문화의 결과이자, 그 조직이 실패를 다뤄온 방식의 축적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실패를 개인에게 귀속시켜 온 조직은 절차를 늘리고, 실패를 학습으로 전환해 온 조직은 절차를 구조화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한 결재 라인일지라도,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정리하며 다시 한 번 느낀 점은, 승인 절차를 비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절차를 해석하는 언어를 조직 안에 갖추는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왜 이 단계가 필요한지, 이 질문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이 승인으로 무엇이 명확해지는지를 설명할 수 있을 때, 승인 절차는 더 이상 조직의 발목을 잡는 장치가 아니라 운영을 지탱하는 뼈대가 됩니다. 적어도 제가 몸담아 온 조직들에서는 그 차이가 분명히 존재했습니다.